행복을 찾아서/MTB 기록

MTB를 타고 산으로

소나무(감자) 2020. 6. 2. 04:28

언젠가 독일로 이민간 친구가 버리고간 MTB가 있어서 

그것을 마석으로 이사오고 나서부터 탔다.

한강변을 달리는 기분이 꽤 좋았다. 

힘들기도 하지만 운동도 되고.

그런데 자전거가 좀 작고 몸에 맞질 않아서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안장 높이도 한계선을 넘게 뽑아서 쓰고 있었고, 핸들이 상대적으로 낮으니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고

프레임도 작다는 말이고... 

 

그래서 몸에 맞는 자전거를 사기로 마음먹고 알아보았다.

검색하고, 여러사람으로부터 조언을 받고, 그리고 유튜브를 보고.

집앞 바이크샵에도 가보고.

종류가 많다. 

그런데 자전거가 별로 없다.

여름에 연식이 변경된다면서 지금은 2020년 모델이 들어갈때라고, 다 팔리고...

이유는 모르지만 코로나 땜에 자전거가 많이 팔렸다고하고. (누구는 몇년 쌓인 재고를 다 털었다나... )

 

오랜 갈등을 조급한 마음으로 후다닥 접고 드디어 주문을 했다.

그런데 이틀후에 전화가 왔다. 물건이 없다는 것이다.

 

아... 이런, 또 고민.. 

좀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오프라인 대형 매장에도 갔다.

눈이 더 넓어졌다.

 

애초 사려고 주문까지했었던 것은 하드테일 MTB였다.

이것은 주로 한강변을 달리고 가끔 임도 정도 달릴때 적정한 것으로 이제는 판명되었다.

알아보니 산에서 타는 자전거는 뒷바퀴에도 충격흡수장치(쇽업소버)가 있는 것을 타야하더라.

이것을 시장에서는 풀샥 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뒤에도 샥(이렇게 부르기로)이 있으니 당연 하드테일보다 무겁고 비싸다. 

 

하드테일 자전거는 재질을 카본으로 바꾸는 등 무게를 경량화 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앞바퀴 샥을 고급화된 제품을 달면서

산길(임도)에서도 달리기 좋게 만드려는 것이

제품 개발 및 개인들 업그레이드의 방향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강변은 그냥 일반 하이브리드 자전거 (자전거길 다니기 좋게 만든)를 타는게 낫고,

산에서 하드테일은 내리막에서 불편함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사족: 싸이클 (로드 자전거)은 아무리봐도 자전거 선수들이 타는 것 같은데 한강변 자전거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싸이클이든 하드테일이든 타는 사람의 거의 대부분은 자전거 선수들이 입는 옷을 입고 다니더라.

보기에 좀 민망한...  머그건 그렇다 치고.. 

 

딱 봐도 풀샥이 제대로된 MTB이다.

풀샥을 고르고 나니 이제 전기의 도움을 받느냐 마느냐로 고민이 옮겨 갔다.

이부분은 어렵지 않았다.

산에서는 자전거를 밀거나 메고 올라가야할 경우가 있는데,

미는건 그렇다 치고, 메는 것을 전기자전거는 무거워서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프레임 (삼각형 핸들바 쪽부터 페달이 있는 크랭크 쪽으로의 내부)에 배터리를 대부분 장착하는데,

무게중심이 당연히 좀더 위로, 그리고 좀더 앞으로 쏠리게 되고, 산에서 내려올때 안정성이 떨어진다. 

(대신 올라갈때는 앞바퀴 들림 같은게 덜할거 같긴 하다)

그리고 배터리 자체가 가지는 한계 - 크기/무게/휴대성/재충전소요시간 - 가 여전하고

이는 지난 10여년간 그닥 발전하지 못한 분야이다.

역으로 말하면 혁신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오르막을 오를 때 얻을수 있는 커다란 잇점은 결정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라도 전기자전거를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선택들을 하고 있다.

아마도 MTB를 끌고 산을 올라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

그래서 잠깐(2~3일간) 고민했었다. 

 

그냥 아날로그로 선택을 했다.

라피에르 제스티 AM FIT 4.0 ('19)

5월 31일, 친구따라서 처음으로 산으로 자전거를 짊어지고 올라갔다. 

산 능선 바로 밑까지 도로로 어프로치가 되는 제일 쉬운 곳을 골라서...

하지만 참으로 힘들었다.

밀고, 메고 이동하는 것이 정말로... 

길을 안내한 친구는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서도 자전거를 탄채로 오르막을 오르고,

내리막에서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 탄력으로 다음 오르막을 쳐 올리고

메고 올라가는 것도 익숙하게... 

난 아직 새로 산 자전거와 몸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함께 움직여야하는데 퉁퉁 튀고 부딪히고 엇박자나고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전거가 움직이고

그러다보니 자주 멈추게 되고. 뒤쳐지고,

메고/밀고 한바탕 싸움을 한시간 넘게 벌린것 같다. 

4키로 정도 가는데, 가는 내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가져간 물은 30분도 안되어 다 마셔 버렸다.

 

https://connect.garmin.com/modern/activity/5015403911

 

이렇게 힘들었었던 적이 언제였을까?

아마 군대에서 신병으로 자대배치를 받고 처음 집합걸려 기합을 받을때 이후로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힘들지 않기위해 힘든 것도 힘들지 않게하는 요령을 그 때 이후로 익히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세상을 힘들지 않게 요령으로 살아 왔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았던 것은 또 아니지만... 20,30대 때는 끊임없이 힘들었었지... )

어쨌든 정말로 이렇게 몸의 에너지를 단시간에 폭발시키듯 방출하기는 30여년만에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와 전철역 앞 치킨집에 들러 세수하러 들어간 화장실 거울에

낯설지만 언젠가 본 듯한 익숙한 얼굴이 비쳤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그 얼굴.

반갑기도 하고.

30여년간의 게으름에 얼굴은 물론 가슴까지도 푹 시들은 그에게

아주 잠깐이지만 생기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가능성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이는 일이던가.

게으르지 않게, 다시 온 힘을 쏟아부어 나머지 50년을 살아야지... 

지난 50년은 참으로 운빨로만 살아왔지,

엄마 아빠 부모님 형제 가족들 덕에 대충 살아도 되었었다. 

앞으로 50년이 살아가야할 진정한 삶이고, 그려낼 그림이리라.